백봉거사의 선(禪)

보림(寶林)

거사는 자신이 법을 펴는 곳을 보림선원이라 불렀으며, 자신을 따르는 학인들의 모임을 보림회로, 자신의 선을 보림선이라 이름지었습니다. 보림사에서 법을 폈던 중국 6조 혜능을 좋아해 가져온 것입니다. 거사는 무식하며 불교를 전혀 모르고 살다 어느 날 발심하여 깨달음을 이룬 자신의 로정(路程)이 혜능과 비슷함을 들며 불교에 대한 지식이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심지어는 방해가 됨을 역설하곤 했습니다. 최상승 도리를 직파하는 혜능의 가르침도 종종 인용했습니다.


보림3관

보림3관은 선수행을 통해 얻어진 지견을 확인하는 질문입니다. 거사는 여름과 겨울의 7일 용맹정진이 끝날 때면 보림3관에 대한 답을 내도록 학인들을 채근했습니다. 답안이 수준에 이른 학인은 지견을 인가 받았습니다.

不去不來處 가고 옴이 없는 곳에
生者何物 滅者何物 산 자는 무엇이며 죽는 자는 무엇인고?

心外無法處 마음 밖에 법없는데
迷者何物 悟者何物 미한 자는 무엇이며 깨친 자는 무엇인가?

人我皆空處 너와 내가 비었는데
說者何物 聽者何物 말하는 자는 무엇이며 듣는 자는 무엇인가?

거사는 위의 문제를 내며 스스로 답을 하였습니다.

不去不來處, 生者何物 滅者何物?
泰山刮目來 태산이 눈을 부릅떠서 오니
綠水掩耳去 녹수는 귀를 가리고 가누나

心外無法處, 迷者何物 悟者何物?
古路草自靑 옛길에 풀은 스스로가 푸르느니
正邪俱不用 바름과 삿됨을 아울러 아니쓰네

人我皆空處, 說者何物 聽者何物?
若論今日事 만약 오늘 일을 논의하면
忽忘舊時人 문득 옛 때 사람을 잊으리


보림5규

보림5규는 보림선원의 청규로, 또는 학인으로서 세상에 나가 살며 지켜야 할 윤리로 볼 수 있으나 실은 당처, 마음자리, 절대성,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자리를 밝힌 것입니다.

黙言江山是非絶 입을 다문 강산에 옳그름이 끊겼으니
凡聖共吹無孔笛 범부와 성현은 한가지로 구멍없는 피리를 불더구나

直心可得太古音 곧은 마음이면 좋이 태고의 소식을 얻느니
一向鐵花去年枝 한결같은 쇠꽃은 지난 해의 가지에 피네

端正不亂體圓明 단정하여 어지럽지 않으니 바탕이라 두렷이 밝을새
銅雀點頭却飛來 구리새가 머리를 저으며 문득 날아 오네

淨潔道場在何方 정결한 도량은 어드메인고
前三三與後三三 앞도 셋셋 뒤도 셋셋일러라

人和家和世界和 사람이 화합하고 집안이 화합하면 세계도 화합하느니
石馬走破十萬里 돌말은 십만리를 뛰어가더구나


삼선칠구(三禪七句)

삼선칠구는 여래선, 조사선, 보림선의 3선과 최초구. 말후구, 향상구, 향하구, 기특구, 전신구, 격외구의 7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학인들은 누구나 자기 살림, 자기의 선을 가져야 한다며 여래선, 조사선과 더불어 자신의 선, 즉 보림선을 제시했습니다. 거사는 삼선칠구를, 특히 보림선과 최초구를 즐겨 강의하곤 했습니다.

如何是 如來禪 어떠한 것이 여래선인고?
不藏一粒米 한 톨의 쌀도 간직하지 아니하고
不耕一莖菜 한 줄기의 나물도 갈지 아니하였네

如何是 祖師禪 어떠한 것이 조사선인고?
殺人刀與活人劒 사람을 죽이는 칼은 사람을 살리는 칼로 더불어
虎頭虎尾一時收 호랑이의 머리와 꼬리를 한 때에 거두더라

如何是 寶林禪 어떠한 것이 보림선인고?
說頭也落說不著 말머리가 떨어져도 말이 붙지 않으니
無限淸風捲大地 한이 없는 맑은 바람은 큰 땅을 말아내누나

如何是 最初句 어떠한 것이 첫 구인고?
無邊虛空一句來 가이 없는 허공에서 한 구절이 오니
案山踏地大圓鏡 허수아비가 땅을 밟을새 크게 둥근 거울일러라

如何是 末後句 어떠한 것이 끝 구인고?
指頭有眼人 손가락에 눈이 있으니
聲色同時發 소리와 빛깔이 같이 피어나네

如何是 向上句 어떠한 것이 향상구인고?
箭離弓絃無反回 화살이 활줄을 떠나 돌아오지 않으니
月明照見夜行人 달은 밝아서 밤길 가는 사람을 비춰보더라

如何是 向下句 어떠한 것이 향하구인고?
智人食無底鉢飯 슬기로운 사람은 밑 빠진 바리의 밥을 먹고
愚人聽没絃琴聲 어리석은 사람은 줄없는 거문고의 소리를 듣는구나

如何是 奇特句 어떠한 것이 기특구인고?
擧一而明三 하나를 듦에 셋을 밝히니
忽破石虎頭 문득 돌 호랑이 머리를 부수네

如何是 轉身句 어떠한 것이 전신구인고?
換却天下人舌頭 천하인의 혓바닥을 바꾸어 버리면
左轉右轉任自在 왼쪽으로 굴리고 오른쪽으로 굴림을 스스로가 하네

如何是 格外句 어떠한 것이 격밖의 구인고?
有眼有耳如聾盲 눈을 두고 귀를 두면서 소경과 귀머거리 같으니
天上人間幾人和 하늘 사람 땅 사람은 몇이나 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