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강송(金剛經 講頌)


저자 : 백봉 김기추
판수 : 초판
제본 : 양장
쪽수 : 312
정가 : 18,000원
출판브랜드 : 가을여행
발행일 : 2021년 2월 15일
ISBN : 979-11-963570-4-7 93220

책소개


처음 펼쳐본 금강경에 감동하여 밤을 새 노래(頌)를 짓다.
“산에서 내려와 보니 조그마한 금강경이 있어요. 번역이 아니에요. 한문으로 되어 있는데. 아이고, 어떻게 어려운지! 그런데 대강 보니 굉장한 책이라! 아는 건 알고 모르는 건 모르는데. 반야바라밀다니 뭣이니 전혀 몰랐죠. 한데 가만 보니 ‘대강 이 말이다’ 하는 걸 알겠어요. 그래서 게송(偈頌)을 달아봤습니다. 게송을 달기 위해서 단 것도 아닙니다, 재미로 달았습니다. 전부 달고 나니 새벽 4시 15분 전이에요. 게송을 달 때 책을 낸다느니 이런 생각은 안 했습니다. 책이란 학자들이 내는 것 아닙니까? 나 같은 무식쟁이가 어떻게 책을 낼 겁니까?"
(저자, 1982.7)

초판(1964)부터 불교계에 화제가 되었던 책
“초판(初版)에서 이미 법열(法悅)을 얻은 사람들의 수로도 짐작이 가거니와 이제 이를 보완 재판(再版)하였으니 그 누구라도 이 무한한 공덕장(功德藏)을 대하게 되면 자연 의내명주(衣內明珠)를 되찾아 본지풍광(本地風光)의 여여한 소식을 만끽할 것이다.”
(백웅白熊 홍영의洪永義의 2판 추천사에서)

50여 년간 만권이 넘게 보급되었으나 갈증이 여전한 책
1985년 저자가 입적하며 이 책이 절판된 후 헌책방에서도 구할 수 없다며 이 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는 전화가 이어졌다. 그러나 한자 혼용, 고어적 표현 등 한글 세대가 가까이하기 어려워 어느 출판사도 책을 내려는 뜻을 내지 못했다. 다행히 2004년 운주사가 뜻을 세우고 한글세대의 감각에 맞게 책을 편집해 출간했다. 그러나 운주사도 2018년 책을 절판함으로써 이 책은 다시 헌책방에서 구하기 어렵고 프리미엄이 많이 붙은 책이 되었다.

추천사


백봉의 금강경을 읽지 않고는 ‘금강경 읽었다’는 소리 하지 말라!
정말 저는 지금도 이 이야기를 해요, 법회 때,,, ‘우리나라에 현존(現存)하고 있는 금강경 주석(註釋)이 백 권 정도 될 거다. 그 가운데 출가 쪽으로는 소천(韶天), 재가 쪽에는 백봉선생이다. 그 두 권은 읽어봐라. 그 두 권 안 읽고는 금강경 읽었다는 소리 하지 마라.’
- 석성우釋性愚, 시인, BTN회장

혼탁한 사회, 영혼에 병들고 지혜에 녹슨 이 땅의 생신제(生新劑)
일년전까지는 그저 촉망 받는 일개 구도자였던 이분이 그야말로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의 기연(機緣)을 가진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분이 본 강송(講頌)의 교간(校刊)을 나에게 부탁하였을 때 내심(內心)으로 ‘이분이 불교를 얼마 하지 않은 분이니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이겠거니’하였다. 그러나 이 강송을 일단 정독해 보니 그야말로 언언(言言)이 이인당양(利刃當陽)이요, 구구(句句)가 수쇄불착(水灑不着)이요, 부처의 심간(心肝)을 궤뚫는 것이요, 중생을 해체(解體)하여 버리는 기발(奇拔) 그것임에 새삼 감탄 경복(敬服)을 불금(不禁)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백봉 김기추 선생, 이분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요, 불법의 도리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전준열全俊烈, 동국대교수

미진(迷津)의 교량(橋梁)이요 암야 (暗夜)의 등명(燈明)과 같은 책
백봉 김기추 선생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을 마치 떡을 주무르듯이 자유자재로 그 심오한 의취(義趣)를 갈파(喝破)하고 웅건(雄建)한 송구(頌句)로 노래하였다. 초심자를 위하여서나 전문가를 위해서 이 강송서(講頌書)는 어진 사우(師友)요 선지식이 될 것이다.
- 홍영의洪永義, 시인

백봉 김기추(白峰 金基秋) 거사 약력


1908년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부산 제2상업학교를 중퇴하고 민족운동을 벌이다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1년간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이후‘특급 요시찰 인물’로 일제의 감시와 방해를 받으며 지내다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간사장으로 일할 때 굶주리는 시민들을 보고 양곡창고를 열어 쌀을 나누어 준 것이 군정법령 위반이 되어 5년형을 언도받았다. 재심에서 무죄가 되었으나 이미 형무소에서 2년을 복역한 후였다. 이후 학교를 세우는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다 정치에 뜻을 세우고 자유당에 입당하였으나 4·19혁명으로 자유당과 함께 파산하고 도피하듯 부산을 떠났다. 서울, 인천에서 하릴없이 세월을 보내다 1963년 여름에 불교를 만나 ‘무자(無字)’화두를 받고 참구해 이듬해 1월 크게 깨달았다. 이후 인천, 서울에서 《금강경》을 강의하다가 1970년 충남 유성에 보림선원을 열고 대학생 및 수좌들을 가르쳤다. 1972년 부산으로 선원을 옮긴 후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1985년에 지리산 선원에서 입적했다. 저서에 《금강경강송》, 《유마경 대강론》, 《선문염송요론》(15권), 《백봉선시집》, 《절대성과 상대성》 등이 있다.

출판사 서평


1976년에 출간한 4판을 현대감각에 맞추어 재 편집
1976년에 보림선원에서 발행한 금강경강송(金剛經講頌) 4판을 한글세대를 위하여 새로 편집한 책이다. 거사 생존시의 최종 판인 1976년판은 한자를 많이 써서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한글세대가 해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곳곳에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있어 글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한자를 모두 한글로 바꾸고 부분적으로 문장이나 단어의 순서를 조정하였다. 그러나 한자를 괄호 안에 표기하여 한글화에 따른 오해가 없도록 하였고 한글 세대에게 낯선 어투도 뜻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면 굳이 바꾸지 않았다. 운주사의 양해를 얻어 2004년 운주사 발행판을 1976년의 4판과 한 글자씩 비교하여 재 편집했다.

편집후기


백봉거사가 이 책을 쓰게 된 인연

“산에서 내려와 보니 조그마한 금강경이 있어요. 번역이 아니에요. 한문으로 되어 있는데. 아이고, 어떻게 어려운지! 그런데 대강 보니 굉장한 책이라! 아는 건 알고 모르는 건 모르는데. 반야바라밀다니 뭣이니 전혀 몰랐죠. 한데 가만 보니 ‘대강 이 말이다’ 하는 걸 알겠어요. 그래서 게송(偈頌)을 달아봤습니다. 게송을 달기 위해서 단 것도 아닙니다, 재미로 달았습니다. 전부 달고 나니 새벽 4시 15분 전이에요. 그 때 책을 낸다느니 이런 생각은 안 했습니다. 책이란 학자들이 내는 것 아닙니까? 나 같은 무식쟁이가 어떻게 책을 낼 겁니까?”
저자, 1982.7, 부산 남천동

1964년 1월의 일이었다. 거사는 얼마 후 금강경과 자신이 한자로 지은 게송을 한글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실상(實相)을 알고 나니 전도몽상속의 가족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던 것이다.

"뭐뭐 해도 가족이 제일 가깝지 않아요? 가족들을 가르쳐야 되겠다. 그래서 이리저리 번역을 했습니다. 번역을 했는데 알 수가 없겠어. ‘여시(如是)’를 알 수가 없겠어. ‘여시여시시여시(如是如是是如是)’ 이래 해봤든 무슨 말이지 모르겠어. 그러면 어떻게 하노? 뭘 또 하나 붙여야 되지 않겠나? 그래서 이걸 붙였습니다. 무변허공(無邊虛空)에 일구래(一句來)하니, 가이없는 허공에서 한 구절이오니 구모토각(龜毛兎角)이 만허공(滿虛空)이로구나. 거북털과 토끼뿔이 허공에 꽉 찼더라. 이렇게 했는데. 아 이것도 또 어렵다 말이지. 이거 어찌 하면 좋겠노? 이거 참 큰일났네. 내 첫 일입니다. 처음으로 내가 붓을 잡았는데. 어디 책상이나 있나요? 밥상을 갖다 놓고 썼죠. 가만 보니 어렵거든. 이걸 어찌 해야 되느냐? 어쩔 도리가 없어. 가족들이 아나 모르나 올바로 문자 표현을 해야 되겠다. 그래서 ‘산(山)은 산, 수(水)는 수, 산수가 각래(却來)요.’ 산은 산이라, 물은 물이라. 여시의 소식이 그렇다 말입니다. ‘남(男)은 남, 여(女)는 여, 남녀가 향거(向去)라.’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잔데 문득 가, 향해 가. 이리 해 놓고 보니 마음이 반은 풀려요."
저자, 1984.12, 산청

동국대교수 전준렬이 책을 발행하다
그렇게 해서 금강경을 가르치기 위한 기초적 교재가 만들어졌다. 마침 거사의 대오를 지켜 본 몇몇 도반들이 거사에게 설법을 요청했고 거사는 이 교재를 가지고 그들에게 금강경의 뜻을 밝혀 주었다. 강의를 하며 거사는 틈틈이 원고를 썼다. 출판을 하기로 작심한 것이다. 같은 해(1964년) 가을, 거사는 안면이 있는 동국대의 전준렬교수를 찾아가 원고를 내 놓았다. 그 때의 상황이 전교수가 쓴 책의 해제에 잘 나와 있다

지금부터 바로 일 년 전 그때까지는 일개 촉망되는 구도자(求道者)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이분이 그 후에 그야말로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의 기연(機緣)을 가진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분이 금반(今般)에 본 강송(講頌)의 교간(校刊)을 나에게 부탁하였을 적에 나는 내심으로 이분이 불교를 얼마 하지 않은 분이니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이겠거니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얼마나 정중와(井中蛙)의 소견이냐. 이 강송을 일단 손에 하고 정독하건대 그야말로 언언(言言)이 이인당양(利刃當陽)이요, 구구(句句)가 수쇄불착(水灑不着)이요, 부처의 심간(心肝)을 꿰뚫는 것이요, 중생을 해체(解體)하여 버리는 기발(奇拔) 그것임에 새삼 감탄(感歎) 경복(敬服)을 불금(不禁)하였다. 여기에는 나의 놀라움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백봉(白峯) 김기추(金基秋) 선생 이분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요, 불법의 도리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교수는 동국대 구내의 인쇄소에서 책을 인쇄하여 자신이 대표로 있는 동국출판사 발행으로 이듬해(1965년) 2월 세상에 책을 선보였다. 이 땅 불교도의 소의경전이라 하는 금강경이지만 한글을 섞어 쓴 해설서가 한 두 종에 불과한 시절이었다. 가뭄에 단비처럼 기다리던 책이었고 전준렬의 표현처럼 부처의 심간(心肝)을 꿰뚫고 중생을 해체(解體)하여 버리는 기발(奇拔)함이 있는 책이었다. 개정판(1967)에 실린 시인 홍영의의 추천사에 초판을 맛 본 불교계의 평가가 들어 있다.

초심자를 위하여서나 전문가를 위해서 이 강송서(講頌書)는 어진 사우(師友)요 선지식이 될 것은 그 초판(初版)에서 이미 법열(法悅)을 얻은 사람들의 수로도 짐작이 가거니와 이제 이를 보완 재판(再版)하였으니 그 누구라도 이 무한한 공덕장(功德藏)을 대하게 되면 자연 의내명주(衣內明珠)를 되찾아 본지풍광(本地風光)의 여여한 소식을 만끽할 것이다.

거사는 금강경 강의를 계속하며 개정판을 냈으나 그에 만족하지 않았다. 1972년 3판을, 4년 후(1976년)에는 4판을 냈다. 그러나 4판은 3판은 판형이 동일하다. 그 4판이 거사 생존시의 마지막 판이다.

도서출판 운주사가 한글세대에 맞도록 책을 편집하여 출간하다
거사가 1985년에 입적하고 몇 년이 지나 거사의 금강경강송은 시중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헌책방에서도 책을 구할 수 없다며 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는 전화가 보림선원에 이어졌으나 한자 혼용, 고어적 표현 등 한글 세대가 가까이하기 어려운 책이어서 어느 출판사도 책을 내려는 뜻을 내지 못했다. 다행히 운주사가 뜻을 세우고 한글세대의 감각에 맞게 책을 편집해 2004년에 출간했다. 운주사 편집진은 본문이 시작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이 편집 사실을 밝혔다.

일러두기
이 책은 백봉(白峯) 김기추(金基秋) 선생님의 금강경강송(金剛經講頌)을 한글세대를 위하여 한글 위주로 새로 편집한 책이다. 원저(原著)의 내용을 그대로 한글로 옮기되, 오해가 없도록 가능한 많은 한자(漢字)를 부기(附記)하여 그대로 두었다. 선생님의 어투가 한글세대에게 낯선 경우가 많겠지만, 본래의 취지를 살리고자 그대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다만 부득이한 경우에만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문장(文章)이나 단어(單語)의 순서를 조정하였다.

아쉽게도 운주사는 몇 년 전 이 책을 절판했다. 거사의 금강경 강송은 다시 헌책방에서도 구하기 어렵고 프리미엄이 많이 붙은 책이 되었다. 평소 백봉거사를 존숭해 온 진주의 대경건설, 이윤우회장이 이 이야기를 듣고서, 출판비용을 보시하여 이 책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운주사본(2004)을 기초로 하여 새롭게 편집하다
본서는 운주사의 양해를 얻어 2004년 운주사 발행판을 기초로 편집했다. 우선 운주사 발행본과 1976년 보림선원 발행의 4판을 한 글자씩 비교하여 고쳐진 내용이 무엇인지를 파악했다. 고쳐져야 할 곳이 대체로 잘 고쳐져 있었다. 더러는 적확하게 고쳐지지 못한 부분도 있었고, 과하게 고쳐진 부분도 있었다. 살펴보건대 운주사는 매우 어려운 작업을 훌륭히 수행했다고 하겠다. 그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여전히 남아 있는, 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한자를 없애고,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문장이나 단어의 순서를 바꾸었으며, 때로는 문장을 삭제하고 때로는 문장을 추가하여 문맥을 바로 잡았다. 대오(大悟)하신 분이 쓰신 글을 지혜가 부족한 사람들이 바꾸는 일을 하며 상당한 거리낌과 신중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운주사의 편집진이 용기를 내어 그 어려운 일을 했듯이 우리도 용기를 내야 했다. 만용이 되지 않도록 ‘편집에 오류가 없기를, 부처님과 거사의 뜻이 더욱 잘 드러나기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발원하며 일을 했고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거사의 제자들과 상의하여 결정했다.

성문4과 등 저자가 불학이나 한문 독해에 부족하여 잘못 쓴 부분이 있기도 하였으나, 금강경의 대의를 밝히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 곳은 그대로 두었다. 혹 본서를 읽으시다가 편집과 교정의 오류를 발견하시게 되면 rocky1035@daum.net로 알려주시기를 삼가 부탁드립니다.

목차


머리말•5
해제서인•10
인생의 노정기다•21

제일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 ­법회의 인유 분 27
제이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선현이 법을 청하는 분 46
제삼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큰 수레의 바른 마루 분 55
제사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머무름 없는 묘행분 63
제오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이치대로 실다이 보는 분 75
제육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바로 믿기 드문 분 83
제칠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얻음도 말함도 없음 분 95
제팔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불법이 낳음 분 103
제구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하나인 모습은 모습이 없음 분 110
제십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정토를 장엄하는 분 118
제십이 존중정교분(尊重正敎分)­바른 교화를 존중하는 분 134 제십삼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법다이 가짐 분 142
제십일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하염없는 복의 수승한 분 125
제십사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모습을 여읜 적멸 분 153
제십오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경을 지니는 공덕 분 166
제십육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업장을 맑힘 분 173
제십칠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마침내 나 없음 분 181
제십팔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한 몸을 한가지인 것으로 보는 분 193
제십구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법계에 펴짐 분 202
제이십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빛깔과 모습을 여읨 분 208
제이십일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말씀은 말씀하신 바 아님 분 214
제이십이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법은 좋이 얻음 없음 분 220
제이십삼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깨끗한 마음으로 착함을 행하는 분 226
제이십사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복과 슬기는 못 비김 분 232
제이십오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되어지는 바 없이 되는 분 238
제이십육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법신은 아닌 모습인 분 243
제이십칠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끊기고 꺼짐이 아닌 분 251
제이십팔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받음이 아니고 탐함이 아닌 분 256
제이십구 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적적 고요한 거동 분 261
제삼십일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지견을 내지 않는 분 278 제 삼 십 일합이상분(一合理相分)­한 뭉치의 이치 모습 분 267
제삼십이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응화는 참이 아닌 분 284

맺음말•295
부록 / 예불송•299
편집후기•305

본문발췌


나날이 뚜렷함이여! 안 꺼지는 나날의 등불이로다.
그 성체(性體)는 휘영청이 맑아서 시방(十方)에 두루하고,
그 이량(理量)은 영특스리 밝아서 일체(一切)에 잠겼으니,
이 미(迷)함이냐, 이 깨침이냐!
태산(泰山)이 눈을 부릅떠서 오니 녹수(綠水)는 귀를 가리고 가는 증처(證處)인지라, 이 실로 너의 알뜰한 터전인 줄로 알라.

생각 생각이 환함이여! 안 꺼지는 생각 생각의 등불이로다.
그 위덕(威德)은 외외(巍巍)하여 사해(四海)를 거느리고
그 공행(功行)은 당당(堂堂)하여 구류(九類)를 건지니,
이 참이냐, 이 거짓이냐!
옛 길에 풀은 스스로가 푸르르니 바름[正]과 삿됨[邪]을 아울러 안 쓰는 용처(用處)인지라, 이 바로 너의 살림인 줄로 알라.

자국 자국이 시원함이여! 안 꺼지는 자국 자국의 등불이로다.
그 수단(手段)은 호호(浩浩)하여 이변(二邊)을 거두움에 뜻하여 이루지 못함이 없고,
그 방편(方便)은 탕탕(蕩蕩)하여 삼제(三際)를 말아냄에 행하여 달(達)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 실다움이냐, 이 헛됨이냐!
만약 오늘 일을 논의하면 문득 옛 때의 사람을 잊어버리는 응처(應處)인지라, 이 오로지 너의 맡음[任]인 줄로 알라. (7쪽)

지금부터 바로 일 년 전 그때까지는 일개 촉망되는 구도자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이분이 그 후에 그야말로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의 기연(機緣)을 가진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분이 금반(今般)에 본 강송(講頌)의 교간(校刊)을 나에게 부탁하였을 적에 나는 내심으로 「이분이 불교를 얼마 하지 않은 분이니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이겠거니」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나의 정중와(井中蛙)의 소견이냐. 이 강송을 일단 손에 하고 정독하건대 그야말로 언언(言言)이 이인당양(利刃當陽)이요, 구구(句句)가 수쇄불착(水灑不着)이요, 부처의 심간(心肝)을 꿰뚫는 것이요, 중생을 해체(解體)하여 버리는 기발(奇拔) 그것임에 새삼 감탄(感歎) 경복(敬服)을 불금(不禁)하였다. 여기에는 나의 놀라움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백봉 김기추 선생 이분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요, 불법의 도리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17쪽)

“무변허공일구래(無邊虛空一句來)하니 구모토각만건곤(龜毛兎角滿乾坤)이로다.”
번역하여 “가이없는 허공에서 한 구절이 오니, 거북 털과 토끼 뿔이 하늘과 땅에 가득함이로다.”
태초(太初)의 일구(一句)라 하여 두자.

이 소식부터 불꽃이 튀니, 아예 모든 것을 여의고 달려들라
산(山)은 산(山), 수(水)는 수(水), 산수(山水)가 각래(却來)요,
남(男)은 남(男), 여(女)는 여(女), 남녀(男女)가 향거(向去)라.

이러히 이러히니 이것이 이러히네(如是如是是如是)
이러히 밖에따로 이러힌 없는거이(如是外別無如是)
사람은 모른고야 이것이 이러힘을(世人不知是如是)
이저곳 헤매이며 이러힐 찾는고야(左往右往覓如是)(29쪽)

애오라지 부처님이 법의(法衣)를 입으심은 참으로 입으심일까? 그러나 법의를 입으시지 않음도 아니며, 바리를 드심은 참으로 드심일까? 그러나 바리를 드시지 않음도 아니며, 사위의 큰 성안으로 들어가심은 참으로 들어가심일까? 그러나 사위의 큰 성안으로 들어가시지 않음도 아니며, 밥을 비심은 참으로 비심일까? 그러나 밥을 비시지 않음도 아니며, 본곳으로 돌아오심은 참으로 돌아오심일까? 그러나 본곳으로 돌아오시지 않음도 아니며, 진지를 마치심은 참으로 마치심일까? 그러나 진지를 마치시지 않음도 아니며, 의발(衣鉢)을 거두심은 참으로 거두심일까? 그러나 의발을 거두시지 않음도 아니며, 발을 씻으심은 참으로 씻으심일까? 그러나 발을 씻으시지 않음도 아니며, 자리를 베풀어 앉으심은 참으로 앉으심일까? 그러나 자리를 베풀어 앉으시지 않음도 아님이로다.
히힛! “약무공중월(若無空中月)이면 안득천강월(安得千江月)이리요.” 이 무슨 소식일까? (43~44쪽)

장하도다, 장로 수보리시여!
세존이 한마디의 말씀도 끄집어내시기도 전에 그 뜻을 드시었으니 그 경계를 알아차리셨네. 그 경계라서 한 마디의 말귀로 「드무십니다」 하시니 바로 천기(天機)를 누설(漏說)함이로다.

천기를 누설함이여!
구름은 가다가 멈추지 않고 그대로 가며, 달은 뜨다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뜨며, 물은 흐르다가 멈추지 않고 그대로 흐르며, 꽃은 피다가 멈추지 않고 그대로 피니, “여여부동(如如不動)이여 조이상적(照而常寂)하고, 올올회광(兀兀回光)이여 적이상조(寂而常照)로다.” 번역하되 “의젓하여 안 움직임이여, 비추어서 항상 적적하고, 오뚝하여 빛을 돌이킴이여, 적적해서 항상 비춤이로다.” 허허! 한 개 뿔 난 토끼가 물속 달을 품음이로다. (51~52쪽)

삼계라서 곡두런가 복덕또한 곡두로다(三界是幻福亦幻)
본래참이 아니러니 곡둔장차 꺼질것이(本非實故幻將滅)
곡두라서 꺼지며는 성품두렷 밝으리니(幻滅眞性一圓明)
우뚝스리 홀로가리 하늘땅의 그밖으로(屹然獨步乾坤外) (132~133쪽)

부처님이 이 경전을 모신 처소에까지라도 공덕성(功德性)이 서리어 있음을 드신 것에 참으로 중요한 의취가 있음이 느껴진다. 앞에서 경(經)의 수승을 밝히시고 다음은 인법(人法)의 존중을 가리키셨다. 인간으로서의 존중할 바가 성현(聖賢)이라면 성현(聖賢)의 조종(祖宗)은 당연히 부처님이시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조종(祖宗)은 누구냐고 할진댄, 두말할 것 없이 경(經)이라고 답을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므로 이 경(經)은 불(佛)과 성현(聖賢)의 조종(祖宗)이 되는 바이라, 그 수승(殊勝)함을 좋이 말할 수가 없으니 실로 경전(經典)의 존귀함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이럴진대 불(佛)과 성현(聖賢)의 조종(祖宗)이 경전(經典)이라면 그 경의 조종(祖宗)은 마땅히 누구일까? 자! 학인(學人)들은 한마디 일러라. 이 대목도 건성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드높은 관문(關門)이니 사나운 정진으로 돌파하라.(137-138쪽)

이러기 때문에 불(佛)은 비불(非佛)이며 비비불(非非佛)이요,
법(法)은 비법(非法)이며 비비법(非非法)이라 일컫겠으니,
어즈버야, 산하대지(山河大地)는 산하대지가 아니면서 산하대지가 아님도 아니로구나. 에익! 닻줄을 감아라.(187쪽)

이렇듯이 절대성인 평등상면(平等相面)의 바탕이 엄연하므로 상대성인 차별상면(差別相面)의 무궁무진한 조화는 그 연(緣)에 따라 꽃을 피우고 그 기(機)를 좇아서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것이니, 바야흐로 공중월(空中月)이 있음으로써 애오라지 수중월(水中月)은 청풍(淸風)으로 더불어 일경(一景)을 더하는 것이라 않겠는가. 이러므로 하여서 법신(法身)은 되돌아 색신(色身)이요 색신은 되돌아 법신이며, 체(體)는 바로 용(用)이요 용은 바로 체인지라, 법신(法身)과 색신(色身)은 비일(非一)이요 비이(非二)이다. 태허중(太虛中)에서 출몰(出沒)하는 억천만의 차별상면도 다 의젓하여 움직이지 않는 법성체(法性體)인 평등상면으로 좇아 이루어졌기 때문에 차별상면은 평등상면으로 더불어서 비일(非一)이요 비이(非二)라 일러서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지마는, 이 말은 공리(空理)에 통달한 분(分)의 소임임도 아울러 덧붙여 둔다.(209쪽)

수보리 장로는 확실히 부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병에 걸리신 모양이다. 부처님은 수보리 장로가 아직도 모습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쓸어내지 못한 줄로 아셨던지 「삼십이상(三十二相)으로 여래를 뵈올진댄 전륜성왕도 곧 이 여래이냐」 하시고 크게 철퇴를 내리신다.
장로는 급히 말씀을 돌리시어 「삼십이상으로 여래님을 뵈옵지 못하겠습니다」고 황황히 여쭈셨다.

갈수록 태산(泰山)이로다. 해공제일인자(解空第一人者)이신 장로의 첫째 답은 그 때와 그 경우로 보아서 잘못된 답이라면, 둘째 답은 이 때와 이 경우로 보아서 거듭 잘못된 답이라 하겠다. 이럴진댄 앞에서는 색신(色身)에 미(迷)한 답이고, 지금엔 법신(法身)에 깨친 답이실까? 틀렸다. 그렇다면 바탕과 씀이는 따로 놀아나니 무궁한 조화는 뉘라서 굴리게! 이럴진댄 앞에서는 가사답(假事答)인데 지금엔 실리답(實理答)이실까? 틀렸다. 그렇다면 삶과 죽음은 둘이니 초상은 뉘라서 치게! 이럴진댄 앞에서는 도중답(途中答)인데 지금엔 가리답(家裡答)이실까? 틀렸다. 그렇다면 무릇과 거룩은 엇갈리니 천당과 지옥은 뉘라서 말아내게! 그러나 인생의 오는 곳을 알면 앞의 답은 옳다. 그러나 인생의 가는 곳을 모르면 뒤의 답은 그르다.

아서라! 부처님과 장로는 중생을 계오(啓悟)시키는 방편(方便)을 높이 드심이신데, 다만 중생들이 제가 모르고 왈가왈부(曰可曰否)할 뿐이로다. 똥 무더기에서 연꽃이 피듯, 왈가왈부에서 법눈이 밝아지네!(242~243쪽)

이렇듯이 천당을 세우고 지옥을 세움도 도무지 한생각에 달렸고, 중생을 굴려서 부처를 지음도 오로지 한 마음에 걸린 것이니, 어찌 중생이란 이름자를 걷어잡고 부처님의 제도(濟度)를 새삼 기다릴까 보냐. 비록 그러하나 부처님의 가르치심에 따라 중생성(衆生性) 중에 본래로 생멸(生滅)이 없는 줄을 깨쳐 알고서 입으로는 무상법(無相法)을 말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무상행(無相行)을 닦지 않으면 어느 때를 기다려서 무상도(無上道)를 깨치리요.

알지어다! 법(法)을 취함도 원래가 어리석은 짓이지만, “공(空)을 깨쳤다” 함도 또한 이에 참이 아니어늘, 어디로 향하여서 천진면목(天眞面目)을 접하겠는가. 이 또한 드높은 고개로다. 모름지기 법(法)과 공(空)을 다 놓으라. 놓다가놓다가 보면 안 놓이는 것이 있으리니, 이 바로가 본래로 확연한 영지(靈知)인지라, 애오라지 눈에 보이는 것마다 만고(萬古)의 풍광(風光)이요, 귀에 들리는 것마다가 겁외(劫外)의 지음(知音)인걸! 어찌 들뜬 의심을 좇아서 몸 밖을 향할까 보냐!(279쪽)

호호탕탕 함이러니 말씀없는 그말씀에(浩浩蕩蕩說無說)
부처님과 보살들이 일로좇아 오시구나(諸佛菩薩從此來)
몸을한번 뛰치어서 허공뼈를 추려내니(飜身驀踏虛空骨)
흙소라서 소리치며 긴강으로 들어가네(泥牛大吼入長江)(2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