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겁인2

-한국의 유마 백봉거사를 다시 회상하며


저자 : 최운초
판수 : 초판
제본 : 무선철
쪽수 : 448
정가 : 16,000원
출판사 : 가을여행
발행일 : 2018년 5월

책소개


백봉거사를 모시고 수행을 한 일곱 제자들과의 인터뷰와 일송, 자운, 서운등 백봉거사의 큰 제자 세 사람의 행장이 들어 있다. 또 무비, 성우, 지환스님 등 출가 전이나 후에 백봉거사와 인연이 있었던 세 스님과의 인터뷰가 들어 있다. 백봉거사 문하 제자들의 깊은 불연(佛緣)과 발심, 그들을 지도하는 백봉 거사의 지혜와 방편이 제자들과의 인터뷰와 행장에 생생하게 들어 있다. 또한 스님 들과의 인터뷰에는 출가자의 입장에서 재가자인 백봉 거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들어 있으며 도(道)에는 승속(僧俗)이 없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백봉 김기추(白峰 金基秋) 거사 약력


1908년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부산 제2상업학교를 중퇴하고 민족운동을 벌이다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1년간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이후‘특급 요시찰 인물’로 일제의 감시와 방해를 받으며 지내다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간사장으로 일할 때 굶주리는 시민들을 보고 양곡창고를 열어 쌀을 나누어 준 것이 군정법령 위반이 되어 5년형을 언도받았다. 재심에서 무죄가 되었으나 이미 형무소에서 2년을 복역한 후였다. 이후 학교를 세우는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다 정치에 뜻을 세우고 자유당에 입당하였으나 4·19혁명으로 자유당과 함께 파산하고 도피하듯 부산을 떠났다. 서울, 인천에서 하릴없이 세월을 보내다 1963년 여름에 불교를 만나 ‘무자(無字)’화두를 받고 참구해 이듬해 1월 크게 깨달았다. 이후 인천, 서울에서 《금강경》을 강의하다가 1970년 충남 유성에 보림선원을 열고 대학생 및 수좌들을 가르쳤다. 1972년 부산으로 선원을 옮긴 후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1985년에 지리산 선원에서 입적했다. 저서에 《금강경강송》, 《유마경 대강론》, 《선문염송요론》(15권), 《백봉선시집》, 《절대성과 상대성》 등이 있다.

출판사 서평


백봉 김기추 거사는 20세기 ‘한국의 유마 거사’로 추앙받는 불교계의 큰 산맥이다. 그는 50세를 훌쩍 넘겨 불교에 입문했지만 용맹정진으로 단기간에 큰 깨달음을 얻었고, 이후 20여 년간을 속가(俗家)에 머물면서 거사풍(居士風) 불교로 후학지도와 중생교화에 힘쓴 탁월한 선지식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그를 따랐으며, 그의 자비심에 넘치는 열정적인 설법은 많은 사람에게 인생의 존엄성을 알게 하였다. 그리하여 닫혀있던 좁은 마음의 문이 열리고 눈에서는 시비ㆍ분별의 비늘이 떨어졌으며 집착과 망상을 내려놓아 참다운 자유와 안심을 얻은 제자들이 적지 않았다.

백봉 거사는 《금강경강송》, 《유마경 대강론》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거사의 설법을 녹음한 테이프가 300여 개나 되고 제자들은 그 테이프에서 추출한 내용으로 《도솔천에서 만납시다》와 《허공법문》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래서 거사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는 여러 책에 자세히, 반복해서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거사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거사의 발 아래서 공부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거사가 어떻게 제자를 지도했는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수행을 했는지, 그리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등등을 궁금해 했다.

그래서 백봉 거사를 모시고 공부한 제자들이 스승과 함께 하며 지도를 받은 이야기, 또 스승의 언행을 지켜본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만들어 2011년 《공겁인》을 출간했다. 그러나 책을 낸 후 좋은 이야기를 가진 제자들이 계속 발굴되고 특히 《공겁인》에 담겨지지 않았던 백봉 거사 말년의 모습을 그려주는 이야기들이 나와 후속편을 기획하게 되었다. 후속편을 기획하며 제자들은 《공겁인》과 성격을 좀 달리하기로 했다.
출가자의 관점에서 백봉 거사를 조망해 줄 수 있도록 인연이 있는 스님들을 찾아 인터뷰하여 그 인연담을 책에 넣음으로써 백봉 거사에 대한 승가의 관점을 독자와 함께 하도록 했다. 또 백봉 거사의 대중 교화에 큰 공헌을 했고 마음공부에 있어서도 높은 고개를 넘은 큰 제자 세분의 행장을 넣어 그 분들의 구도심, 수행, 깨달음, 그리고 자비행을 세상에 남기고자 했다.
《공겁인》이 8년의 산고 끝에 세상에 선을 보였는데 이 책 역시 2014년에 시작하여 5년 만에 완성되었다. 이 책을 살펴보면 그 오랜 산고가 조금도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발간과 더불어 《공겁인》을 개정하여 《공겁인1》로 재 발간했다.

저자소개


스물아홉에 백봉 거사를 만나 입문했고 이듬해 선원에 입주해 직접 사사를 받았다. 서울대에서 우주항공공학을 전공하고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경영컨설턴트로 일했으며 《성과주의의 혁신》 《이너게임》 《공겁인1,2》 등 저서와 역서 8권이 있다. rocky1035@daum.net

목차


머리말

제1부 일곱제자 이야기

1 _ 황벽과 백봉이 서로 통하다 ..... 치 허(菑虛) 노규현 거사

2 _ 오직 백봉 선생님만 이야기하고 싶었다 ..... 초 산(草山) 진명순 보살

3 _ 백척간두 진일보의 삶으로 ..... 탄 연(坦然) 장철순 거사

4 _ 한생각 거두니 만법이 사라지네 ..... 연 화당(蓮華幢) 안정옥 보살

5 _ 허공으로서의 나를 찾아라 ..... 일 지(一地) 장백기 거사

6 _ 괴로운가? 불교공부를 하라 ..... 반야심(般若心) 박숙 보살

7 _ 백봉은 나에게 절대의 스승이다 ..... 가 운(家雲) 홍승동 거사

제2부 세 스님 이야기

1 _ 도의 경지는 출가 재가의 분별을 떠나 ..... 무 비(無比) 스님

2 _ 세뱃돈 대신 선문염송을 번역하신 인연 ..... 성 우(性愚) 스님

3 _ 눈보라 치는 산기슭에 개구리가 개골개골 ..... 지 환(智幻) 스님

제3부 세 큰제자 이야기

1 _ 맹인과 벙어리가 다투는데 부처님이 크게 웃더라 ..... 일 송(逸松) 정영모(鄭永謨) 거사

2 _ 모두가 구멍 없는 피리를 가지고 태평가를 부르네 ..... 자 운(自運) 이점준(李 俊) 거사

3 _ 본래 검지도 희지도 않고 푸르지도 노랗지도 않다 ..... 서 운(瑞雲) 진용선(陳龍善) 거사


본문발췌


황벽스님이 ‘내가 허공이다’라는 말을 쓰셨거든요. 황벽과 백봉이 서로 통한 겁니다. 황벽의 견처에요. 백봉의 견처가. 수준이 그래요.
(치허 노규현)

비교를 하고 싶단 생각도 문득 들었는데. 순수하게 백봉 선생님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 쪽에는 누구도 안 넣었습니다. 제 다른 논문에는 황벽, 조주 다 들어갑니다.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연구 논문에도 많이 들어가요. 경經도 들어가고. 그런데 백봉 선생님은 ‘이것만 하자’ 이게 제 고집이었습니다. 정말 누구와 비교하고 하는 거 안 하고 싶었습니다. 논문은 비교하고 넣어야 하는데 안 넣고 싶었습니다. 딱 그것만 하고 싶었습니다.
(초산 진명순)

우리 선생님 말씀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말이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의 해석을 해 주신 게 있습니다. 그게 지금 너무 마음에 와 닿아요. 명각明覺을 한 다음에 해야 할 게 있다는 거죠.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거죠. 상대성으로 와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아무도 이걸 안 가르쳐요. 명각明覺 이후는 안 가르쳐요. 우리 선생님은 끝까지 그 말씀을 하셨어요.
(탄연 장철순)

뭐 내 마음이 허공인데 허공 속에서 법문도 일어나고, 읽는 것도 여기서 일어나고, 듣는 놈은 거기서 듣고, 이래 가지고 가만히 듣고 있는데 선생님이 “연화당!” 하고 고함을 지르는 거예요. 이리 되잖아요?(보살님은 몸을 움찔했다.) 갑자기 “연화당!” 하니까. 허공하고 하나되어 있다가. 영산회상하고 보림회상하고 어떻게 다르냐고 물으세요. 딱 보니까 영산회상도 허공이고 보림회상도 허공이잖습니까? 하나인줄 알겠데요. 시간을 초월해 가지고 하나 되는 것을. 그렇게 깨우쳤죠.
(연화당 안정옥)

나는 잘 한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과가 잘못됐다면 그건 내 책임이 아니지 않느냐? 그런 걸 가지고 “네가 죄를 지었으니 너는 지옥에 가라!” 한다면 나는 수긍하기 힘들다. 그래서 대학 다닐 때 의논할 상대가 되는 사람들을 많이 찾아 다녔어요. “죄가 되는 게 뭐냐?” “어떻게 하면 죄가 안 되는지 가르쳐 달라!” 거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대체로 “잘못 안 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 말을 많이 들었죠.
(일지 장백기)

나는 너무 힘든 삶을. 내 스스로 마음의 고통을 만든 것도 있겠지만. 당장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삶이 행복하고, 그러니까 그냥 좋아요. 예를 들어 이 자연을 바라봐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참 좋은 거라! 옛날 같았으면 이 자연을 바라봐도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나? 이렇게 먹고 살고. 저렇게 먹고 살고’ 하는 생각이 가득하겠죠. 그러니 이 자연이 그대로 보이겠어요? 지금은 자연이 그대로 눈에 들어와요. ‘좋으면 좋다. 나쁘면 나쁘다.’ 있는 그대로 들어와요.
(반야심 박숙)

삼배를 드리고 그 앞에 꿇어 않았죠. “답을 해라! 첫 번째 ‘불거불래처不去不來處’에 대한 답을 해라!” 하시더라고. 그때 준비된 답을 말씀드렸어요. 지금은 그 답이 기억이 안 나요. 선생님이 첫 구를 집중해서 들으시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호통을 치시는 거예요. “이 뭐라고? 뭐라? 삿된 것은 알아가지고! 이런 마구니 같으니!” 온통 화나셔서 얼굴이 빨개져 가지고. 그러고는 방으로 쑥 들어가시더라고요. 입주 학인들이 다 보고 있었어요. 한마디로 처참하죠! 자존심도 뭉개지고! 지옥이죠! 바로 그 자리가 지옥이더라고요!
(가운 홍승동)

그렇죠. 내가 몇 번 남천동에 갔어요. 거기 가서 법문을 들으면 남천동에서는 사람이 상당히 많이 모였어요. 그때 분위기가 아주 굉장했어요. 어느 사찰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것인데, 오는 사람들이 모두, 뭐라 할까 불법의 진수에 대한 어떤 열기를 느낄 수 있었죠. 열기가 있었어, 열기가. 다른 선방이라든지, 선지식의 회상에 가도 그런 열기를 못 느꼈거든. 그런데 그 열기가 특별했어요
(무비스님)

그때 백봉한테 물었어요. ‘화두 할 때 술을 마셨느냐?’ 마셨대요. ‘담배를 피웠느냐?’ 피웠대요. 그리고 ‘보살님하고 잠자리를 했느냐?’ 그러니깐 하는 말씀이 너무 명쾌하게 ‘그 좋은 것 왜 안 하느냐?’라고 해요. ‘그 좋은 걸 왜 안 하느냐?’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이 싹 무너지더라고! 그러니깐 불필요한 어떤 선입관이 무너지더라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성우스님)

그 집 앞에 장미꽃이 피어있었는데, “저 꽃 색깔이 뭐냐?” 백봉 거사님께서 물어보더라고. 제가 뭐라 대답을 했어요. 아마 “꽃 색깔이 없다.” 뭐 그리 대답했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백봉 거사님께서 죽비를 치시면서 “맞다” 하시면서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그리고 보림삼관寶林三關을 물으셨는데 내가 그것들에 대해 대답을 했어요. 그렇게 다 하니까 인가를 하셨어요. 당신이 ‘무영無影’이라는 호를 가지고 계셨어요. ‘없을 무無’자에, ‘그림자 영影’자. 인가 제1호 제자한테 당신이 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시면서 그 호를 나에게 주셨어요.
(지환스님)

산 이름은 무슨 일로 내장산이라 했느냐
필시 그 안에 내 밥그릇을 감추었구나
해마다 해마다 서리 맞은 잎사귀는 몇 년이나 거듭했는고
단풍 숲 붉은 이불 속에는 고래가 알을 품었구나
(일송 정영모)

아버지는 일찍 불교공부를 했으면 공무원생활도 더 잘했을 거라고 아쉬워하셨어요. 그러면서 우리 보고도 자꾸 ‘가자가자’ 하셨지요. 우린 가기 싫어했죠. 결국 고등학생 때 발을 들여 놓았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거지요. 아직까지 제가 보림선원에 나와 공부하는 것 모두 아버지의 덕입니다. 불교 공부하신 아버지의 그늘이 있으니, 지금 환갑이 다 되어가는 저도, 지금 이 공부를 하는 겁니다. 평생 아버지의 은덕을 입는 거지요.
(자운 이점준)

눈은 옆으로 찢어지고 코는 바로 섰으니 여래와 같구나
공 가운데 공이 없으나 그래도 공이다
심인을 주고받는다고 말하지 말라
본래 검지도 희지도 아니하고 또 푸르지도 노랗지도 않다
(서운 진용선)